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7인의 트롯 영웅, 그리고 기막히게 완벽한 인디 데뷔작: 장르를 초월한 무르익음의 미학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7인의 트롯 영웅, 그리고 기막히게 완벽한 인디 데뷔작: 장르를 초월한 무르익음의 미학

음악이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어떤 날에는 객석을 들썩이게 만드는 날것의 땀방울과 폭발적인 라이브가 우리를 구원하고, 또 어떤 날에는 촘촘하게 직조된 스튜디오 앨범의 서늘한 공기 속으로 침잠하는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최근, 이 두 가지 대척점에 있는 완벽한 음악적 경험들이 연달아 우리를 찾아왔다. 울산을 펄떡이게 만든 ‘미스터트롯3’ TOP7의 전국투어 무대, 그리고 영국 인디 씬에서 날아온 밴드 메리 인 더 정크야드(Mary in the Junkyard)의 기막힌 데뷔 앨범 [Role Model Hermit]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31일,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은 그야말로 터질 듯한 열기로 가득 찼다. 오후 1시와 6시 두 차례에 걸쳐 열린 ‘미스터트롯3’ 2차 전국투어 콘서트는 무대 위 아티스트와 관객이 어떻게 교감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오프닝 VCR과 함께 무대에 등장한 7명의 멤버(김용빈, 손빈아, 천록담, 춘길, 최재명, 남승민, 추혁진)는 ‘사랑의 트위스트’와 ‘환희’를 연달아 터뜨리며 공연장의 온도를 단숨에 끌어올렸고, 객석은 일제히 일어나 뜨거운 환호로 화답했다.

이날 솔로 무대의 포문을 연 것은 진(眞) 김용빈이었다. 나훈아의 ‘무심세월’을 특유의 깊고 처연한 음색으로 뽑아내며 묵직한 울림을 안긴 그는, 이후로도 ‘비나리’, ‘금수저’, ‘보고싶어서’를 비롯해 진선미 스페셜 무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그리고 할머니를 향한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내 삶의 이유 있음은’까지 애절하게 소화하며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선(善) 손빈아는 ‘사랑병’을 부른 뒤 “제가 사랑병에 걸린 것처럼 이 무대가 미치도록 그리웠다”며 벅찬 인사를 건넸고, 미(美) 천록담 역시 ‘제3한강교’로 무대를 달군 후 능스름하게 호응을 유도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춘길의 ‘눈동자’, 최재명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남승민 ‘건배’, 추혁진 ‘불꽃처럼’으로 이어진 솔로 릴레이는 각자의 뚜렷한 개성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무대 중간 춘길은 “여러분의 눈과 귀, 마음까지 꽉 채워 드릴 테니 중간에 지치지 말고 끝까지 놀아보자”며 텐션을 한껏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들의 진짜 매력은 장장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고동락하며 쌓아 올린 ‘끈끈한 케미’에서 빛을 발했다. ‘우는 멤버 눈에서 다이아몬드가 떨어지면 먼저 달래줄 것인가, 아니면 일단 다이아몬드부터 주울 것인가?’,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은 능력 vs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능력’ 같은 골때리는 밸런스 게임을 진행하며 공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김용빈은 “저희들의 성격과 취향은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무대를 날아다닌다는 거“라며 유쾌하게 게임을 마무리지었다.

그의 말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고장난 벽시계’, ‘내 나이가 어때서’ 같은 세월 메들리부터 스페셜 유닛 무대(천록담·춘길의 ‘준비 없는 이별’, 김용빈·손빈아·추혁진의 ‘또 만났네요’, 최재명·남승민의 ‘누나가 딱이야’), 그리고 후반부를 수놓은 손빈아의 ‘나를 살게 하는 사랑’과 ‘삼백초’, 춘길의 ‘목포행 완행열차’, 천록담의 ‘빈 잔’과 ‘눈물의 부르스’, 최재명의 ‘꽃이 피고 지듯이’, 남승민의 ‘한량가’, 추혁진의 ‘그 집 앞’까지. 이들은 숨 쉴 틈 없이 내달렸다. ‘쌈바의 여인’, ‘풍악을 울려라’, ‘모나리자’ 메들리에 이어 ‘사랑의 미로’와 ‘애모’ 앙코르가 끝날 때까지 이 7명의 영웅들은 글자 그대로 무대 위를 날아다녔다.

수많은 오디션과 무대를 거치며 단련된 트롯맨들의 땀내 나는 라이브가 이토록 직관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어떤 밴드의 데뷔 앨범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흠뻑 젖게 만든다.

밴드 씬에서 ‘데뷔 앨범’이란 꽤나 얄궂은 덫이다. 입소문을 타며 잔뜩 기세를 올리다가도 막상 첫 정규 트랙들이 전파를 타는 순간 기대감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목격해 오지 않았나. 하지만 메리 인 더 정크야드(Mary in the Junkyard)는 자신들의 차례가 오자마자 보란 듯이 이 까다로운 데뷔작을 홈런으로 연결해 냈다.

첫 트랙 ‘Mantra III’부터 이들은 기묘한 아름다움과 스산한 불안감 사이로 청자를 훅 끌어당긴다. 특정한 박자를 거부하듯 산발적으로 흩어지는 퍼커션과 현란하게 뜯기는 코드들 위로 *”이건 네 거야, 베이비, 넌 그럴 자격이 있어(this is yours, babe, you deserve it)”*라는 주문 같은 가사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밴드는 이 오프닝 트랙을 통해 청자를 아주 비좁고 촘촘한 음악적 주머니(pocket) 속에 심어놓는다. 주변을 둘러보고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내어주면서 말이다. 이후 30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은 그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빠져나오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앨범의 직물이 점점 느슨해지면서 더 깊은 구덩이로 속절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최근 몇 년간 등장한 데뷔작 중 가장 입체적이고 아름다우며, 지독하게 잘 짜인 음반 속으로 말이다.

물론 숨통을 틔워주는 구간도 존재한다. 이어지는 ‘Blood’와 ‘Seek And Destroy’는 템포를 한껏 끌어올리며 꽤나 정석적인 패턴을 밟아가는데, 덕분에 청자는 살짝 중심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뒤로 쏟아지는 트랙들은 이 음악적 주머니의 솔기마다 특유의 시적인 감각과 몽환적인 분위기, 심지어 이따금씩 터지는 펑크(funk)의 타격감까지 겹겹이 직조해 낸다.

갓 데뷔한 밴드의 앨범이 이토록 완벽하게 뼈대에 살이 붙은 채로 완성도를 자랑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이미 수년간 DIY 라이브 공연을 전전하며 곡들의 흠집을 매끄럽게 다듬어왔고, 평단과 팬들 모두에게 찬사를 받은 EP들을 발매하며 묵묵히 내공을 쌓았다. 프론트퍼슨이자 다악기 연주자인 클라리 프리먼-테일러(Clari Freeman-Taylor)는 *”이 앨범을 만드는 건 저희에게 정말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위해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거든요. 앨범 작업에 돌입하기 전에 저와 멤버들 모두 마음가짐을 제대로 다잡을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이 엄청난 압박감을 견뎌낸 결과, 이들의 데뷔작은 실험적이면서도 접근하기 쉽고, 두서없는 듯 보이지만 소름 돋게 세련됐으며, 유령처럼 스산하면서도 묘하게 포근한 모순적인 성취를 이뤄냈다. 앨범의 백미로 꼽히는 ‘Crash Landing’은 그 짙은 분위기의 밀도가 하도 쫀쫀해서 손으로 부여잡고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트랙이다. 관계의 파국과 유해한 남성성을 꼬집는 이 곡의 멜랑콜리한 악기 편성은 프리먼-테일러의 보컬과 만나 완벽한 배경지식으로 기능한다. 정적을 깨는 찰나의 섬세함을 지녔으면서도 재생되는 내내 청자에게 기묘한 안도감을 쥐여주는 그녀의 보컬 컨트롤은 그저 압도적이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첫 앨범이라는 마지막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지만, 메리 인 더 정크야드는 기어코 살아남아 자신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아 올렸다. 울산의 밤을 뒤집어 놓은 미스터트롯3 멤버들의 무대가 끈질긴 인내와 땀방울로 빚어낸 뜨거운 생명력이었다면, 메리 인 더 정크야드의 데뷔작은 지독한 담금질 끝에 탄생한 서늘하고도 완벽한 은신처다. 결국 장르가 무엇이든, 이들이 딛고 선 곳이 터질듯한 라이브 무대이든 적막한 스튜디오이든 상관없다. 긴 시간을 버텨내며 기어코 자신만의 ‘폼’을 완성해 낸 이들의 음악은 결국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빈틈없이 채워버리고 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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