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끝없는 영토 확장: 블랙핑크가 닦은 길 위에 세워진 그래미와 빌보드의 새 역사

K팝의 끝없는 영토 확장: 블랙핑크가 닦은 길 위에 세워진 그래미와 빌보드의 새 역사

K팝의 글로벌 위상과 그 폭발적인 성장세를 논할 때, 지수, 제니, 로제, 리사로 구성된 블랙핑크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YG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세상에 등장한 이 네 명의 멤버는 뇌리에 박히는 중독성 강한 가사와 시선을 뗄 수 없는 퍼포먼스로 단숨에 세계적인 팝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이 2020년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로 24시간 만에 8,630만 뷰를 찍으며 당시 유튜브 기네스 기록을 갈아치웠을 때만 해도, 대중은 그것이 그저 한순간의 신드롬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2년, 이들은 K팝 걸그룹 최초로 영미권 팝 시장의 양대 산맥인 미국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정상을 동시에 휩쓸며 스스로 증명해 냈다. 2026년 4월 현재까지도 이들이 유튜브 전 세계 아티스트 중 최다 조회수와 구독자 수를 거느린 밴드라는 사실은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잘 보여준다.

음악 산업의 경계를 넘어선 아이콘

이들의 행보는 단순히 스트리밍 횟수나 앨범 판매량이라는 숫자에만 갇혀 있지 않다. 솔로와 그룹 활동을 병행하며 숱한 세계 신기록을 써 내려가는 동시에, 자신들이 가진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사회적 의제로 확장시켰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캠페인이다. 전 세계 팬덤의 동참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블랙핑크는 2023년 11월 런던 버킹엄 궁전에서 K팝 아티스트 최초로 명예 대영제국 훈장(MBE)을 수훈하는 진풍경을 만들어냈다. 아시아의 걸그룹이 영국의 궁전에서 글로벌 기후 위기 대응의 공로를 인정받는 장면은 K팝이 더 이상 변방의 서브컬처가 아님을 선언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애니메이션 OST가 뚫어버린 그래미의 보수적인 벽

이러한 선구자들이 다져놓은 탄탄한 인프라와 글로벌 인식 덕분일까. 최근 K팝이 주류 팝 시장에서 써 내려가는 기록의 스펙트럼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워졌다. 당장 화요일 발표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만 보더라도 흥미로운 지형도가 그려진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Las guerreras K-pop)’의 사운드트랙 ‘Golden’이 2주 연속 4위라는 최상위권에 랭크되며 무려 32주째 차트를 지키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 곡의 진정한 가치는 지난 일요일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증명됐다. K팝 장르 역사상 최초로 ‘최우수 영상 매체 작곡상(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이 K팝의 이름으로 그래미의 보수적인 벽을 허물었다는 사실은 현지 매체들 사이에서도 꽤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뤄지고 있다. 해당 OST 앨범의 파급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 수록곡 ‘How It’s Done’이 빌보드 싱글 차트 59위에 진입했고 OST 앨범 자체도 메인 앨범 차트 8위에 안착했다.

차트 위를 달리는 다양한 얼굴들

현재 빌보드 차트 곳곳에 포진한 다른 아티스트들의 성적표 역시 K팝 생태계의 파이를 실감케 한다. 하이브 산하의 글로벌 그룹 캣츠아이(Katseye)는 싱글 ‘Gabriela’를 29위, ‘Internet Girl’을 80위에 올려놓으며 만만치 않은 음원 화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두 번째 EP ‘Beautiful Chaos’는 ‘빌보드 200’ 56위를 차지했으며, 첫 번째 EP였던 ‘SIS (Soft Is Strong)’마저 138위에 이름을 올렸다. 보이그룹들의 움직임도 꾸준하다. 지난주 앨범 차트 2위로 화려하게 데뷔했던 엔하이픈의 최신작 ‘The Sin: Vanish’는 이번 주 21위로 숨 고르기에 들어갔고, 스트레이 키즈의 ‘Do It’ 역시 88위에 자리 잡고 있다.

특정 국가의 아이돌 음악이라는 좁은 꼬리표를 떼어낸 지는 이미 오래다. 그래미의 문턱을 넘고,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으로 메인 팝 시장을 호령하며, 기후 변화 같은 거대한 글로벌 어젠다에 목소리를 내는 아이콘들을 배출해내는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 지금 이 순간에도 차트를 수놓고 있는 수많은 숫자들이 결국 음악 산업의 지형도를 어디까지 바꿔놓을지 섣불리 재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들이 만들어가는 궤적이 이미 기존 팝 시장의 문법을 완전히 새롭게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