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배우들이 전 세계적인 거대 자본의 콘텐츠 속으로 뛰어들며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홍콩 영화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아이콘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무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으며, 한국 영화계를 상징하는 대배우들은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의 최고 기대작에 나란히 합류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마블에 스며든 애잔한 눈빛, 세대를 초월한 양조위 신드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선보인 첫 아시안 히어로물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극장가에서 무서운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21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누적 관객 수 154만 2,686명을 기록하며 150만 관객을 단숨에 돌파했다. 이는 올해 개봉한 외화 중 ‘블랙 위도우’,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에 이어 세 번째로 빠른 흥행 속도다.
개봉 3주 차를 넘긴 데다 쟁쟁한 신작들이 쏟아진 추석 연휴 극장가에서도 이 작품이 굳건한 저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양조위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거대한 팬덤이 자리하고 있다. 암흑조직 텐 링즈의 수장이자 주인공 샹치의 아버지인 웬우 역을 맡아 첫 할리우드 진출을 알린 그는, 단순한 악당이 아닌 사랑에 눈이 먼 로맨틱한 빌런을 완벽하게 묘사해냈다.
작품 공개 이후 온라인 공간은 그야말로 양조위를 향한 찬사로 뒤덮였다. 중장년층 관객들은 자신들의 청춘이 투영된 영원한 우상의 소환에 감격했고, 그의 전성기를 알지 못하는 10대와 20대들은 이 놀라운 배우를 새롭게 발견하며 입덕을 자처하고 나섰다. 60년의 세월이 깊게 패인 얼굴이지만 그가 뿜어내는 매력에 빠져드는 데는 단 2시간이면 충분했다.
2000년 영화 ‘화양연화’로 제53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일찌감치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양조위지만, 그가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에 가까웠다. 18살 시절 친구 주성치를 따라 오디션장에 갔다가 덜컥 자신만 합격해버린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도박 중독이었던 아버지의 부재와 끔찍한 가난을 겪어야 했던 유년기의 아픔은 역설적으로 그만의 내성적인 성격과 비애를 머금은 애잔한 눈빛을 완성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수많은 취재진이 기억하는 수줍음 많고 왜소한 체격의 사내는 그렇게 전 세계를 매료시킨 가장 입체적인 악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넷플릭스로 무대를 옮긴 거장들, 한국 재벌가 파헤치는 ‘성난 사람들’ 시즌 2
양조위가 스크린에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면, 안방극장에서는 한국의 국민 배우들이 그 바통을 이어받는다. 현대인의 분노와 실존적 불안을 날카로우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파고들어 에미상 8관왕을 휩쓸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이 오는 4월 16일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온다.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 감독과 미국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 A24가 다시 한번 손을 잡은 이번 시즌 2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던 전작의 주인공들과 달리, 누군가와 연결점을 찾은 커플들이 자본주의의 압박 속에서 어떻게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지를 흥미롭게 조명한다.
새로운 이야기는 갓 약혼한 애슐리(케일리 스페니)와 오스틴(찰스 멜튼) 커플이 그들의 부유한 고용주인 조슈아(오스카 아이작), 린지(캐리 멀리건) 부부의 복잡한 삶에 얽혀들며 시작된다. 우연한 만남은 컨트리클럽 담장을 넘어 걷잡을 수 없는 긴장감을 촉발시킨다. 등장인물들은 억만장자 클럽 구단주인 박 회장과 그녀의 두 번째 남편 김 박사를 둘러싼 스캔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게 된다. 여기서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바로 박 회장과 김 박사 역에 나란히 캐스팅된 78세 윤여정과 59세 송강호의 만남이다.
이 엄청난 앙상블이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대본을 받은 송강호는 애초 자신과 배역이 맞지 않는 것 같고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정중히 거절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성진 감독으로부터 상황을 전해 들은 윤여정이 직접 송강호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은 세계 최고의 배우니 어떤 역할이든 해낼 수 있다. 무조건 합류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설득했고, 결국 이 위대한 두 배우의 동반 출연이 완성될 수 있었다.
시즌 1에서 스테레오타입을 깬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삶을 깊이 있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던 제작진은, 이번 시즌에서 한국 재벌의 세계라는 새로운 배경을 통해 재미교포들의 정체성을 한층 다층적으로 탐구한다. 실제로 한국인 어머니를 두고 6년간 한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배우 찰스 멜튼은 이성진 감독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한국계 혼혈 미국인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생생한 경험들을 캐릭터에 고스란히 녹여내 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할 예정이다.
